강태공은 산중의 여인과 작별한 이후, 잠깐 왕실을 들러 문왕과 국사를 논하고 해가 질 무렵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낮에 있었던 여인과의 이야기를 부인에게 들려주었더니 부인이 화를 벌컥 내면서, "여자가 한번 결혼해서, 남편이 죽으면 그것으로 그만이지 무슨 놈의 재혼을 하옵니까?" 라며 그 여인을 힐책하고 자신의 남편인 강태공에게도, "그런 부정(不淨)스러운 여인을 무엇 하러 도와 주었어요." 라고 하며 눈을 흘기며 언설을 높이었다. 이 같은 부인의 말에 강태공 역시 아무리 생각해 봐도 부인이 하는 말이 당연했고 재론의 여지 또한 없었다.
강태공은 마음 속으로 그렇게 말하는 부인이 믿음직스러워 여간 기쁜 게 아니었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그릇에 담긴 물과 같이 이리 기울고 저리 기울어 인심조석변(人心朝夕變)이라 한 옛말이고 보면 열녀같이 말하는 자기 부인도 자신이 죽으면 낮의 그 여인과 다를 바, 없겠지? 하는 생각이 불현듯 일어났다.
그 날 저녁 강태공은 잠자리에 들면서, "아까 낮에 내가 도술을 부리느라고 기(氣)를 너무 많이 빼앗겨서 그런지 피로하오." 하며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는데 부인은 여느 때처럼 곤히 잠을 자고 있었다.
이른 아침 눈을 뜬 강태공은 여느 때 같으면, 도술로 마을 앞 산봉우리를 단숨에 왕래했을 텐데 그렇지 못하고 겨우 일어나 등청하는 정도였다.
그러기를 10여 일, 강태공은 급기야 자리에 눕고 말았다. 일국의 왕사자가, 그것도 도술로 유명한 강태공이 몸져누워 있으니, 한나라의 걱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정 무렵에 온 방을 누비고 다니며, 입에서 선혈(鮮血)을 뿜어대면서 몸부림을 치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운 심정을 불러일으켰다. 새벽까지 그렇게 눈뜨고는 차마 볼 수 없는 고통을 겪다가 강태공은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온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아는 강태공이 죽자. 조문객은 셀 수없이 많아 줄을 이으니, 장례를 유월장(踰月葬), 즉 달을 넘겨 장례를 치르는 독특한 장례법(葬禮法)으로 치르라는 임금의 어명이 내려졌다.
이러하니, 주나라 방방곡곡에서 강태공의 부음을 받고 모인 많은 조문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하루, 이틀도 아닌 무려 한 달이 넘는 긴 장례 기간에 상주(喪主)인 강태공 부인은 여러 조문객 중에 시자(侍者)를 데리고 다니는 용모준수한 쾌남(快男)과 맞절을 하는 중에 이상스럽게도 자신의 몸과 마음이 그 쾌남에게 끌려 들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었다. 지금까지 자기 남편인 강태공이 아닌 다른 남자 에 대해서 옆눈질 한번 해 보지 않았던 자신이, 그것도 하늘과 같은 남편 의 상중(喪中)에 마음을 끄는 남자가 있다는 게 도저히 도덕적으로 용납되 지 않는 것이었으나, 마음은 오로지 그 쪽으로만 끌려 비록 상중이었지만 그 남자의 시자를 통해서 몇 번 만나게 되고 결국 동침까지 하게 되었다.
두 사람의 밀월관계는 점점 깊어져 이젠 장례만 치르고 난 후엔 같이 살자고 언약까지 하였다. 그러는 동안 한 달이 넘어 마침내 장례일이 다가왔다.
장례를 마치고 나면, 그 쾌남이 더 이상 강태공의 집에 머물러 있어야 할 명분이 없어지자. 두 사람은 죽은 강태공을 염하여 입관(入棺)하는 틈에 장례를 치르고 나서 두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의논을 하는 도중에, 갑자기 그 쾌남이 머리가 아프다며 쓰러지는 게 아닌가.
두 손발을 마치 사시나무 떨 듯이 달달달 떨면서 입에서는 거품을 뿜어내는 폼이 금방 죽을 것 같은 참상이었다.
깜짝 놀란 강태공 부인은, 시자에게 그 연유를 물어보니, "우리 주인님은, 간질(癎疾)이란 천하에 몹쓸 병이 있어 가끔 이렇답니다." 라고 말해줬다.
그러자 강태공 부인은 시자에게 "이럴 때면 무슨 약을 쓰느냐?" 고 묻자 시자는, "예, 마님. 이럴 때는 주로 사람의 두개골(頭蓋骨)을 먹으면 쾌차하곤 했는데 요즘은 그 두개골이 다 떨어졌으니 큰 낭패입니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강태공 부인은 뭔가 결심한 듯, "그러면 죽은 사람 두개골도 되느냐?" 고 물었다.
그러자 시자는, "그럼요. 산사람 두개골이 전쟁터가 아니고서야 어디 있나요. 전쟁이 있을 경우는 소인이 몇 개 주워 다가, 잘 보관하여 약으로 쓰곤 했지만 요즘은 강태공이란 분이 차원 높은 경륜으로 임금을 보필하여 태평성대다 보니 버려진 두개골이 어디 그렇게 있어야지요?"
시자의 이 같은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강태공 부인은, "잠시만 기다려라." 하며 밖으로 나갔다.
방에서는 관을 막 들고나와 마당에 놓고서 상여채비를 하는 가 하면 다른 한편에선 수많은 사람들이 관을 붙잡고 목을 놓아 통곡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완전히 이성을 잃은 강태공 부인은 시퍼런 도끼를 한 손에 들고 관 옆으로 다가와 모든 사람들을 잠시 물러나게 하였다.
조문객들은 잠시 숨을 죽이고 상주인 강태공 부인의 행동을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한 손에 아무리 날카로운 도끼를 들었을 망정 이렇게 비통한 상중인데, 뭔가 할 말이 있겠지 하고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강태공 부인은 자신이 서 있는 주위가 좁다며 약간씩만 더 관 곁에서 물러서라고 부탁하고서는 들고 있던 도끼자루를 두 손으로 멀찌감치 잡고서 머리 위로 올려 강태공의 시신이 들어 있는 관을 향하여 힘껏 내리쳤다.
그런데 이상스럽게도 관이 쪼개지는 게 아니고, 탱 하고 오히려 도끼가 튀어버리는 것이었다. 순간적이나마 여러 조문객들은, "으악, 저게 웬 변고냐?" 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강태공 부인은 반사적으로 도끼를 다시 내려치려고 머리 위로 바싹 올리고는 힘껏 내리치려는 순간 바로 뒤에서, "부인, 수고하십니다." 라고 어디서 많이 들어본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와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다 보았다.
그런데 아니 이런 기겁할 일이 일어났다. 한달 전에 죽어서 입관까지 마친 강태공이 눈앞에 턱 버티고 서 있는 것이었다.
죽은 줄만 알았던 강태공이 그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자. 조문객들이 술렁댈 것은 두말할 것도 없고 강태공 부인은 홍당무가 되어 고개를 숙이고 땅바닥에 엎드려 있을 뿐이었다.
조문객 중에는, "저년!, 죽여야 한다." 고 외쳐대는가 하면 포악한 욕설들이 마구 쏟아졌다.
강태공 부인은 이렇게 한달 남짓한 기간 동안 그것도 엄연한 남편 상중에 외간 남자와 정을 통한 용서받지 못할 천하에 부도덕한 패륜녀(悖倫女)로 낙인이 찍혀버렸다.
강태공은 껄껄 웃음을 지으면서 엎드려 있는 부인의 턱을 한 손으로 받쳐들고는, "수고하셨소." 하고 먼저 말을 건넸다. 그러자 부인은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한번만 용서해 주십시요?" 하며 애걸복걸 통사정을 하였지만, 이내 모든 것이 끝나버린 강태공은 다시 껄껄 웃으며, "그렇다면 부인 내가 시키는 대로하시오. 매 마른 땅 위에 물 한 동이를 부어 단 한 방울도 남기지 말고 다시 물동이에 담는다면 용서해주겠소." 라고 단호한 어조로 잘라 말했다.
그러나 그 말은 목을 매 죽으라는 엄포보다도 어려운 명령으로 한번 내뱉은 말에 책임지지 못함을 나무라는 뜻이었다. 부인은 그 길로 뛰쳐나가 물에 빠져 자결을 하고 말았다.
강태공은 부인의 "한 여자가 한 남편을 섬기면 그만이지 재혼이 무슨 놈의 재혼이냐"며 자신은 남편이 죽더라도 절대 재혼 같은 것은 하지 않겠다는 호언장담에 그렇게 현숙한 자신의 부인이라면 과연 어떠한 유혹과 고난에서도 절개를 지킬 수 있는가를 도술로 시험해 본 것이었다.
강태공은 마음 속으로 돈과 권력, 그리고 갖가지 유혹 앞에서 무한히 연약한 게 인간의 마음인 것을 알게 되었다. 강태공은 이렇게 하여 조강지처와는 사별하고 강태공 자신은 훗날 백일승천을 했다.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