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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비와 산중의 미녀
    타임머신 2021. 1. 28.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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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비와 산중의 미녀

     

     

     

    옛날에 시골 마을에 어떤 선비 하나가 살고 있었다.
    글을 많이 읽어 삼강오륜 인의예지를 다 익혔으되, 살기가 무척 어려웠다. 벼슬을 못하여 녹을 받지 못하는데다, 배운 게 글 읽는 일뿐이라 농사든 장사든 아무것도 못하니 살림이 기울 수밖에 없었다. 물려받은 재산이 다 떨어지니 얻어먹지 않으면 굶어죽을 지경이 되고 말았다.

     

    그때 함께 글을 배운 친구 하나가 과거에 급제해서 한양에서 벼슬 살이를 하고 있었다. 그 사람이 언젠가 말하기를,
    "살기 어렵거든 우리 집에 와서 쌀이라도 갖다 먹고 해라." 했던 참이었다.

     

    이 선비가 먹고살 방도가 없으니 그 말만 믿고서 한양으로 친구를 찾아가는 판이다. 한양까지 짚신을 신고 걸어서 가려니 몇날 며칠이 걸릴지 모를 일이었다. 쉬지 않고 간다고 가다 보니 어느 날 그만 인가도 없는 산골짜기 속에서 날이 저물고 말았다.
    '아이쿠 이거 큰일났구나!'

     

    깜깜한 가운데 길을 잃고서 한참을 헤매다 보니 멀리서 불빛이 깜빡 인다. 어찌나 반가운지 숨을 헐떡이면서 찾아가고 보니 꽤나 그럴싸한 기와집이다. 문을 두드려 주인을 부르자 뜻밖에도 천하절색 예쁜 여자 가 나온다.

     

    "웬 선비 양반이 이 밤중에 웬일이신가요?"

     

    그러자 선비가 사정 얘기를 하면서 하룻밤 묵어가게 해달라고 청했다. "집에 저 혼자뿐이니 어쩔까 모르겠네요. 하여간 이 밤중에 다른 델 가시지도 못할테니 안으로 들어오세요"
    안으로 안내해서 방을 정해주더니, 조금 있다가
     "시장하실테니 좀 드세요."
    하면서 음식을 차려오는데, 근래에 먹어보지 못한 진수성찬이었다.

     

    '이상하군. 이 산속에서 어찌 이런 만반진수를!'
    의심이 갔지만 워낙 배가 고팠던지라 앞뒤 가릴 것 없이 맛있게 먹는 것이었다. 먹고 나서 궁금증이 나서 여인한테 묻는다.
    "부인 혼자 계신 집에서 이리 대접을 받으니 송구합니다. 그런데 어찌 이 산속에 혼자 계시는지요?"
    "자식도 하나 남기지 못하고 서방이 돌아가시니 세상만사가 다 싫어져서 그냥 산속으로 숨어들었답니다."
    하면서 한숨을 쉬는 것이었다.

     

    다음날 선비가 길을 떠나려고 하니 여인이 소매를 붙잡으면서,
    "이것도 인연이라고 어렵게 찾아오신 터인데 하루만 더 쉬다가 가시지요. 어째 보내기가 싫습니다."
    그렇게 간절히 만류하자 선비는 그만 마음이 동해서 갈 길도 잊고 그 집에 주저앉고 말았다. 하루종일 편안히 쉬면서 진수성찬을 대접 받고는 밤이 되어 한 이불 속에 들어가니 모든 것이 꿈만 같다.

     

    한번 그렇게 정을 나누고 보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서 하루 이틀 더 묵는다는 게 어느새 달포가 지나고 말았다.
    그제서야 선비가 정신이 번쩍 들어서,
    '이거 큰일났구나. 우리 집 식구들이 다 굶어죽게 되지 않았는가. 정신을 차려야 해.'

     

    그래 여인더러 이제 그만 가보겠다고 하니 여인이 벌써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말을 한다.
    "아무 걱정 말고 더 쉬다 가세요. 선비님 댁에 벌써 먹을 것 입을 것을 다 보내 두었답니다."
    "그게 사실이오?"
    "사실이고 말고요."

     

    그러자 선비는 다시 또 그 집에 머물면서 갖은 대접을 받으며 즐거운 날을 보냈다. 그렇게 달포가 지나자 선비는,
    "아무래도 안 되겠소. 이참에 집에 다녀올테니 보내주구려. 내 꼭 다시 오리다."

     

    그러자 여인은,
    "알았습니다. 다시 꼭 오셔야만 합니다."
    하면서 노자는 물론이려니와 말까지 한 필 내주는 것이었다. 선비가 집에 당도하자 아내와 자식들이 뛰어나와서 반갑게 선비를 맞이한다.
    "수고하셨습니다. 얼마나 좋은 친구를 두었길래 이렇게 금은보화를 많이 보냈는지요. 잘만 하면 평생을 먹고살 수 있겠어요."
    "아 그럼 내 친구인데 오죽할까!"

     

    이렇게 둘러댔지만, 그 재물은 여인이 보내준 것이 분명했다.
    '세상에 덕을 봐도 이렇게 단단히 볼 수가 있나!'
    선비가 집에서 두어 달을 묵으려니 자꾸만 그 여인 생각이 나서 참을 수가 없다.
    '사람의 도리로 보더라도 가서 인사를 하는 게 마땅하지 않은가?'

     

    이렇게 그럴싸한 명분까지 만들어서는 여인을 찾아 길을 떠나는 참이다. 선비가 부지런히 길을 재촉해서 여인이 사는 집이
    보일락말락 하는 곳에 이르렀을 때다. 뜻하지 않게 누군가가 자기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다.

     

    "이보게, 잠깐 내 말을 들어보게."
    선비가 놀라서 살펴보니 백발이 성성한 어떤 노인네가 오동나무 밑에서 자기를 부르고 있다.
    "노인장은 뉘십니까?"
    "내 말을 잘 듣게나. 나로 말하면 하늘 나라에 계신 자네 선친의 친구로세. 그분 부탁으로 이렇게 온 거야. 어떤가, 자네 지금
    웬 여자를 찾아가는 길이 아닌가?"

     

    선비가 머뭇거리면서,
    "그렇습니다만……"
    "자네 아주 큰일 날 뻔했어. 그렇게 모른단 말인가? 그 여자는 사람이 아니라 요귀야. 천년 묵은 구렁이가 둔갑한 거란 말일세. 지금 자네가 가면 잡아먹으려고 준비하고 있는 중이야."
    "……"
    "믿기지 않거든 내 하라는 대로 해보게. 그 집에 당도해서는 문으로 들어가지 말고 살짝 뒷담을 넘어 들어가 방안을 엿보란 말이야. 그러면 사실을 깨닫게 될거야."
    "그런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지요?"

     

    "방법은 한 가지뿐이야. 그 여자가 밥상을 차려오거든 밥을 한 술 떠서 입에 물었다가 여자를 향해 확 뱉어 버리라구. 그렇게 해야만 죽음을 면할 수 있어. 명심하게."

     

    그 말을 남기고는 백발노인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여자의 집에 당도한 선비는 문앞에서 잠깐 망설이다가 집 뒤로 돌아가 살짝 담을 넘었다. 손가락에 침을 발라 문구멍을 뚫고서 안을 들여다보니 아니나 다를까 커다란 구렁이가 굼실굼실 서려 있다.

     

    선비는 그만 오금이 다 저려 왔지만, 마음을 단단히 다잡고는 다시 담을 넘어 대문으로 와서 문을 두드려 주인을 찾았다. 그랬더니 전날 그 여인이 손을 잡으면서 반갑게 맞이한다.
    "오셨군요. 어서 들어가세요."

     

    선비가 방에 앉아 기다리자니 여인이 전처럼 진수성찬을 차려서 내오는 것이었다. 분길같은 손으로 선비의 손에 숟가락을 쥐어 주면서,
    "식기 전에 어서 드세요."
    하고 아름다운 음성으로 권하는 것이다.

     

    밥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집어넣은 선비는 순간 갈등에 휩싸였다.
    '이걸 뱉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뱉으면 나는 살고 저 여자는 죽겠지.
    그러나 따져보면 저 여인 덕에 내가 갖은 호강을 다 누려 보고 굶어 죽을 지경에 있던 우리 집이 잘살 수 있게 되지 않았는가.'

     

    선비는 여인을 한번 바라보더니, 밥을 꼭꼭 씹어서 목구멍으로 꿀떡 삼켰다. 그렇게 밥 한 그릇을 남김없이 비웠다. 그러자 여인이 선비 의 손을 덥석 쥐면서,
    "선비님, 어찌 그 밥을 내게 뱉지 않으셨단 말씀입니까?"

     

    그러자 선비가 그만 깜짝 놀라서,
    "아니, 그 일을 알고 있었단 말이오?"
    그러자 여인이 말했다.
    "알다뿐이겠습니까. 알아도 말을 할 수가 없었던 거지요."

     

    그러면서 그 일에 얽힌 사연을 말해준다.
    "선비님이 만난 백발노인은 천년 묵은 지네랍니다.
    이 골짜기에 나와 함께 살고 있는데 둘 중에 하나만 용이 되어 승천할 수 있는 운명이었지요. 제가 이번에 선비님의 마음을
    얻으면 용이 돼서 올라가게 되는지라 그 일을 방해하려고 그렇게 나타났던 것이랍니다. 이제 저는 선비님 덕택에 용이 되어 승천하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감격에 겨워서 눈물까지 글썽이는 것이었다.
    "그리 된 일이군요. 나는 그간에 입은 은혜가 과한지라 차라리 나 혼자 죽고 말자고 작정했었다오."
    "죽기는 왜 죽는답니까. 만약 선비님이 저한테 밥을 뱉었다면 오히려 해를 당했겠지요. 천년을 기다린 일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판이니 어찌 안 그렇겠습니까. 이제 다 잘 되었으니 걱정 마세요. 자, 저는 이제 떠나갑니다. 길이 평안하세요."

     

    그 말과 함께 갑자기 뇌성벽력이 치면서 천지가 진동하니 선비는 히뜩 정신을 잃고 말았다. 한참 만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기와집은 온데간데없고 바위 위에 누워있는 참이었다. 놀라서 주변을 살펴보니 큰 바위 밑에 구렁이가 용이 되기 위해 도를 닦던 터가 눈에 띈다.

     

    "이게 정녕 꿈은 아니었구나."
    그 후 선비가 집에 돌아온 뒤로 모든 하는 일이 술술 잘 풀려서 평생을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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